모차르트는 왜 레퀴엠을 쓸 수 있었을까?

 



모차르트의 음악을 오래 들어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상한 느낌을 받습니다.

분명히 밝은 곡인데, 어딘가 모르게 가슴이 저립니다.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 장조인데 왜 이렇게 슬프지? 교향곡 40번은 단조라서 그렇다 치더라도, 

41번 '주피터'의 피날레 — 저 압도적인 환희 속에 왜 자꾸 뭔가 무너질 것 같은 예감이 느껴지지?

이게 착각이 아닙니다.

모차르트는 장조와 단조를 남들과 다르게 썼습니다. 당시 작곡가들에게 장조는 밝음, 단조는 슬픔 — 

이 공식은 거의 문법이었지요. 그런데 모차르트는 장조 한가운데 단조 화음을 슬쩍 끼워 넣었습니다. 

티 안 나게. 청중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래서 듣고 나면 왜 울컥했는지 설명이 안 되는 겁니다.

음악학자들은 이걸 두고 "모차르트의 그림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는 것처럼, 그의 음악은 밝으면 밝을수록 그 이면의 무언가가 더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면 레퀴엠으로 돌아가 보도록 합시다.

사람들은 레퀴엠을 모차르트답지 않은 작품이라고 말합니다.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나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레퀴엠은 모차르트가 평생 음악 속에 숨겨두었던 것들이 처음으로 수면  위로 올라온 작품입니다.

그가 35년 내내 장조 속에 몰래 집어넣었던 그 슬픔. 그게 레퀴엠에서는 숨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죽음을 위한 음악이니까. 드디어 마음껏 나올 수 있었던 겁니다.

Lacrimosa 8마디를 다시 들어보지요.

딱 8마디. 모차르트가 직접 쓴 건 그게 전부입니다. 근데 그 8마디 안에 뭔가 이상한 게 있습니다. 

단순히 슬픈 게 아니라  이미 체념한 사람의 얼굴 같습니다. 싸울 힘도 없고, 억울해 할 기력도 없는. 

그냥 다 알고 있는 사람.

35년을 밝게 살았던 사람이 쓴 8마디치고는, 너무 익숙하게 슬픕니다.

한 가지 더.

모차르트는 어릴 때부터 죽음과 가까웠습니다. 

유럽을 돌며 연주 여행을 다니던 시절, 천연두에 걸려 죽을 뻔했고, 누나를 포함한 가족 여럿을 일찍 잃었다. 어머니는 그가 22살 때 파리에서 객사했는데, 모차르트는 그 순간을 편지에 이렇게 남겼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단 한 줄. 그게 다였다.

이 사람이 슬픔을 몰랐던 게 아닙니다.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평소엔 음악 속에 아주 작게만 남겨뒀던 거다. 그래야 계속 쓸 수 있었을 테니까.

레퀴엠은 그 오랜 절제가 마지막으로 허물어진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허물어짐과 함께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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