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zone

유럽 전체가 사랑했던 사람.

mayfield 2026. 7. 3. 14:29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은 이름

어느 날 유럽 음악을 정리하다가, 낡은 라디오 방송 아카이브에서 낯익은 도입부를 들었다. "Lasciatemi cantare…" 그 한 소절만으로 방 안의 공기가 바뀌는 느낌이었다. 노래 제목도, 가수 이름도 정확히 몰랐지만, 멜로디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고서야 그게 토토 쿠투뇨라는 걸 알았다. 이상한 건, 정작 그의 얼굴이나 이름은 낯설었다는 점이다. 노래는 익숙한데 사람은 낯선,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그리고 그 낯섦이야말로 쿠투뇨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첫 단서였다.

스타가 아니라 작곡가였던 남자

쿠투뇨는 처음부터 무대 위의 인물로 설계된 사람이 아니었다. 1970년대 그의 자리는 무대 뒤였다. 수많은 유럽 가수들에게 곡을 써주며 이름을 알렸고, 특히 프랑스 음악 시장에서 그의 멜로디는 이미 하나의 브랜드였다. 흥미로운 건 그가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는 데 별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곡을 팔고, 다른 사람이 부르고, 그 노래가 히트하면 만족하는 방식. 지금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이례적인 태도다. 그런데 바로 그런 태도가 그를 오래 살아남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L'Italiano', 노래 한 곡이 국가가 되던 순간

1983년 발표된 'L'Italiano'는 단순한 히트곡을 넘어선다. 이 곡은 이탈리아라는 나라의 정서 자체를 압축해놓은 결과물에 가깝다. 태양, 가족, 사랑, 향수, 낭만적인 남성성. 쿠투뇨는 특별히 화려한 음색을 가진 보컬리스트도, 카리스마 넘치는 록스타도 아니었다. 대신 그는 사람들이 무엇을 사랑하는지를 정확히 읽었다. 사람들은 실은 이탈리아라는 '이미지'를 사랑한다는 것. 그 이미지를 노래로 번역해낸 사람이 쿠투뇨였다.

유로비전, 그리고 '하나 된 유럽'이라는 노래

1990년, 그는 유럽 음악사에 남을 순간을 만든다. 'Insieme: 1992'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것이다. 제목부터가 상징적이다. 유럽연합이 형성되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이 곡은 단순한 경연 우승곡이 아니라 시대의 사운드트랙이 되었다. 정치적 메시지를 노래에 담는 일은 언제나 위험 부담이 크다. 자칫하면 촌스럽거나 선동적으로 들리기 쉽다. 그런데 쿠투뇨의 곡은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그러나 우아하게 넘어갔다.

왜 러시아는 그를 국민 가수처럼 기억할까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느낀 지점은 여기다. 쿠투뇨는 서유럽보다 오히려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더 큰 사랑을 받았다. 소련 붕괴를 전후한 시기, 그의 음악은 정치나 이념을 초월해 사람들에게 자유와 낭만의 상징처럼 들렸다고 한다. 지금도 러시아에서는 그를 거의 자국 가수처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경을 넘는 음악이라는 표현을 종종 쓰지만, 쿠투뇨의 경우는 그 표현이 과장이 아니었던 몇 안 되는 사례다.

화려함 없는 전설, 그리고 남는 질문

쿠투뇨의 커리어를 돌아보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스캔들도,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도 거의 없다. 그럼에도 그는 생애 내내 유럽 전역에서 사랑받았다. 많은 팝스타들이 자기 자신을 앞세우는 동안, 쿠투뇨는 반대의 길을 택했다. 노래가 주인공이고, 자신은 그 노래를 완성하는 도구라는 태도. 어쩌면 그래서 그의 음악은 세대가 바뀌어도 낡지 않는 것 아닐까. 화려한 스타가 사라진 자리에 노래만 남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성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Toto Cutugno - L'italia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