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를 완성한 건 바흐의 후배들이었다
멘델스존이 마태수난곡을 무대에 올린 1829년 이후, 음악계에 묘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흐가 "재발견"은 됐는데, 아무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지요.
당시는 낭만주의 전성기였습니다. 쇼팽은 피아노로 감정을 폭발시키고 있었고, 베를리오즈는 오케스트라를 영화처럼 쓰고 있었습니다. 음악은 점점 더 크고, 더 감정적이고, 더 개인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 한가운데서 바흐는 차갑고 수학적이고 감정이 없어 보였습니다.
실제로 당시 평론가들은 바흐를 "위대하지만 듣기 불편한 음악"이라고 했습니다. 박물관에 보관해야 할 유물 같은 취급을 했었지요.
근데 쇼팽은 달랐습니다.
쇼팽은 평생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연주 여행을 떠날 때도, 마요르카 섬에서 병으로 누워있을 때도. 제자들에게 레슨할 때 제일 먼저 꺼낸 악보도 바흐였습니다.
왜였을까.
쇼팽은 바흐에서 감정을 숨기는 법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낭만주의 시대에 감정을 숨긴다는 게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쇼팽의 음악을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녹턴이나 발라드는 감정을 직접 쏟아내지 않습니다. 절제된 구조 안에서 감정이 천천히 스며듭니다. 그게 바흐한테서 온 것이지요.
쇼팽은 바흐를 박물관에서 꺼내, 자기 음악 안에 살아있게 만들었습니다.
슈만은 조금 달랐습니다.
슈만은 바흐를 거의 종교적으로 숭배했습니다. 그는 바흐의 대위법 (여러 선율이 동시에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기법)을 분석하는 데 엄청난 시간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남겼지요.
"바흐를 모르는 음악가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과 같다."
근데 슈만의 바흐 사랑에는 개인적인 사연이 있었습니다. 슈만은 말년에 정신질환으로 무너졌지요. 환청에 시달리고, 결국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 극도로 불안정한 시기에 그가 작곡한 곡들이 놀랍게도 바흐의 대위법 구조를 띠고 있었습니다. 감정이 폭발할수록, 구조에 매달렸던 거였지요.
바흐의 음악이 슈만에게는 일종의 닻이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브람스.
브람스는 아예 바흐 연구자 수준이었습니다. 바흐 악보를 수집하고 편집하는 데 참여했고, 바흐 소사이어티 (바흐 전집을 출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의 핵심 멤버였습니다.
브람스 교향곡을 들어보면 유독 두껍고 촘촘한 느낌이 있습니다. 낭만주의 시대 음악인데 왜 이렇게 구조적이지? 싶은 그 느낌. 그게 바흐의 영향입니다. 브람스는 낭만주의의 감성과 바흐의 구조를 결합하려 했지요. 그래서 당시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음악"이라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바그너가 브람스를 공개적으로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아직도 옛날 방식으로 쓰냐"고.
근데 지금은 어떤가요. 브람스 교향곡은 여전히 전 세계 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에 살아있습니다. 바그너의 말은 틀렸습니다.
결국 이런 그림이 나옵니다.
바흐는 죽었고, 잊혔고, 멘델스존에 의해 되살아났습니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었지요. 쇼팽은 바흐에게서 절제를 배웠고, 슈만은 구조를 닻으로 삼았고, 브람스는 그 구조와 감성을 합치려 했습니다.
세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바흐를 해석하고, 자기 음악 안에 녹여낸 결과, 바흐는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언어가 됐습니다.
클래식의 아버지라는 타이틀은 바흐가 스스로 얻은 게 아닙니다. 후배들이 만들어준 거 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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