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델은 독일 사람인가, 영국 사람인가
헨델은 독일 사람인가, 영국 사람인가
답부터 말하면 둘 다 맞고, 둘 다 틀리다.
헨델은 1685년 독일 할레에서 태어났다. 바흐와 같은 해, 같은 나라. 근데 두 사람의 인생 궤적은 완전히 달랐다. 바흐가 평생 독일 밖을 거의 안 나간 반면, 헨델은 스물한 살에 이탈리아로 떠났고, 스물다섯에 영국 런던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다시는 독일로 돌아가지 않았다.
57년을 영국에서 살았다. 죽을 때까지.
근데 단순히 오래 살았다고 국적이 바뀌는 건 아니잖는가?
헨델의 경우는 좀 달랐다. 1727년, 그는 공식적으로 영국 귀화 시민권을 취득했다. 당시 영국 의회가
특별법을 통과시켜서 헨델에게 시민권을 줬다. 왕실 작곡가한테 특별법을 만들어준 거니까, 이건 거의
국가가 "우리 사람"으로 공식 인정한 셈이었던 거였다.
그것도 단순한 거주가 아니라, 영국 왕실과 깊이 엮인 관계였다.
하노버 선제후(나중에 영국 왕 조지 1세가 되는 인물)의 궁정 작곡가로 일하다가, 그 선제후가 영국 왕
이 되면서 헨델도 같이 런던으로 건너간 갔었다. 주인을 따라 나라를 옮긴 셈인데, 그 주인이 왕이 됐으
니 헨델의 위상도 자연스럽게 올라갔었다.
여기서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헨델이 하노버 궁정 작곡가로 일할 때, 선제후한테 런던 방문 허락을 받았다. 근데 런던이 너무 좋았던
나머지 그는 하노버로 돌아가지 않고 그냥 눌러앉아 버렸다.
선제후 입장에서는 당연히 화가 났겠지. 근데 얼마 후 그 선제후가 영국 왕 조지 1세로 즉위하면서
런던에 오게 됐다. 헨델 입장에서는 도망쳤던 주인이 쫓아온 격.
그 서먹한 관계를 헨델이 풀었다는 게 바로 수상 음악 이야기이다. 1717년, 왕이 템스강에서 뱃놀이를
즐길 때 헨델이 배 위에서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수상 음악을 연주했고, 왕이 감동해서 화해가 됐다고
한다.
실제로 그 자리에서 화해가 이루어졌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수상 음악이 조지 1세의 총애를 되찾는 계기
가 됐다는 건 역사적으로 인정된다.
그럼 왜 지금 사람들이 헨델을 영국 사람으로 알까.
이건 헨델이 영국에서 남긴 것들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메시아. 1741년에 쓴 이 오라토리오는 지금도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전 세계에서 연주된다. 그 유명한
할렐루야 코러스 에서는 영국 왕실 공연에서 조지 2세가 감동해서 자리에서 일어섰고, 왕이 일어서면
모두 일어서야 하는 예법 때문에 청중 전체가 기립했다는 그 장면. 지금도 할렐루야가 나오면 기립하
는 전통이 그때 시작됐다고 한다.
왕실 불꽃놀이 음악. 1749년 영국의 전쟁 승리를 기념해서 작곡한 곡. 말 그대로 국가 행사를 위한 음악이다.
영국의 중요한 순간마다 헨델의 음악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영국 사람들은 그를 자기네 사람으
로 느끼게 됐고, 헨델 본인도 독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죽어서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영국 왕과 위인들이 잠든 그곳에.
결국 헨델은 국적보다 삶의 선택으로 영국 사람이 되었다. 태어난 곳은 독일이지만, 음악을 꽃피운 곳,
왕실의 신뢰를 얻은 곳, 뼈를 묻은 곳이 전부 영국이니까. 어떻게 보면 헨델은 18세기판 이민자 성공
스토리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해 같은 나라에서 태어난 바흐는 평생 독일을 안 떠났고, 헨델은 평생 독
일로 안 돌아갔다.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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