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였지만 가난했던 모차르트
우리는 보통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를 이렇게 기억한다.
신동,천재,역사상 가장 완벽한 작곡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를 의아해한다.
“그렇게 유명했는데 왜 가난했을까?”
영화나 드라마는 종종 그를 철없는 천재, 돈 관리 못 하는 예술가로 묘사한다.
하지만 실제 이야기는 훨씬 더 흥미롭고 의외로 현대적이다.
모차르트는 어릴 때부터 유럽 전역을 돌며 연주했다.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아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거의 매니저처럼 활동했다.
왕실 앞에서 연주하고, 귀족 살롱에서 환호를 받으며, 어린 모차르트는 이미 국제적인 스타였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당시 음악가는 아무리 유명해도 귀족의 직원이었다.
월급을 받는 궁정 음악가.
지금으로 치면 세계적인 아이돌이 회사 인턴 계약을 맺고 있는 셈이었다.
20대가 되자 모차르트는 결심한다.
궁정을 떠나 자유 음악가로 살겠다고.
당시에는 거의 혁명적인 선택이었다.
안정적인 월급을 포기하고, 공연·작곡·레슨으로 직접 돈을 벌겠다는 선언이었다.
초기에는 성공적이었다.빈에서 그는 인기 스타였다.
피아노 콘서트는 매진됐고 귀족 학생들이 레슨을 받으려 줄을 섰으며 새로운 작품이
나오면 화제가 됐다. 즉, 그는 가난한 무명 음악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한때는 상위 소득 예술가였다.
그런데 왜 항상 돈이 부족했을까?
여기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해한다.
모차르트는 단순히 낭비벽이 심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문제는 구조였다. 수입이 불안정했다
현대의 프리랜서와 똑같았다.
공연 시즌에는 돈이 넘쳤지만, 전쟁이나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공연 자체가 사라졌다.
18세기 유럽은 정치적 불안과 경기 침체가 잦았다.
수입이 갑자기 끊기는 일이 반복됐다.
빈에서 성공한 음악가처럼 보이려면 좋은 집, 좋은 옷, 사교 활동이 필수였다.
이건 사치라기보다 비즈니스 비용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비싼 장비,네트워킹 모,브랜드 이미지 관리
즉, 그는 스타처럼 보여야 일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저작권 개념이 없었다.
이게 가장 결정적이다.
오늘날 작곡가는 음원 수익, 저작권료, 스트리밍 수입이 있다.
하지만 모차르트 시대에는? 작곡료 한 번 받고 끝이었다.
오페라가 아무리 성공해도 지속적인 수입은 거의 없었다.
현대 기준으로 보면 히트곡을 수십 개 만들고도 로열티를 못 받은 셈이다.
모차르트 하면 흔히 우아한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실제 그는 굉장히 유머러스했다.
친구들에게 장난 편지를 보내고, 농담을 즐겼고, 웃음을 좋아했다.
영화 아마데우스(Amadeus)가 과장하긴 했지만, 그의 유쾌한 성격 자체는 사실에 가깝다.
그는 삶을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동시에 삶을 즐기려 했던 사람이었다.
흔히 “빈민 공동묘지에 버려졌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지만, 이는 과장된 신화에 가깝다.
당시 빈의 장례 관습상 중산층 시민들은 공동 묘지에 묻히는 경우가 많았다.
즉, 완전한 빈곤 속 죽음이라기보다 재정적으로 불안정했던 프리랜서 예술가의 마지막에 가까웠다.
그의 음악은 천재의 여유가 아니라,끊임없이 창작해야 했던 삶의 속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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