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그를 악마라고 불렀을까 — 파가니니의 충격적인 삶
19세기 유럽에는 이런 소문이 돌았다.
어떤 바이올리니스트가 무대에 올라 연주를 시작하면 관객들이 공포에 가까운 침묵에 빠진다는 이야기. 그 음악가는 바로 니콜로 파가니니(Niccolo Paganini)였다.
파가니니의 첫인상은 당시 기준으로 매우 기괴했다. 관객을 무섭게 만든 외모로,
지나치게 마른 몸, 창백한 얼굴,길고 뼈처럼 보이는 손가락 그리고 검은 옷만 입는 습관 등
무대 위에서 몸을 비틀며 연주하는 모습은 마치 사람이라기보다 어떤 존재에 가까웠다.
19세기 사람들에게 그는 음악가가 아니라 초자연적 현상처럼 보였다.
그의 기술은 당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한 줄만 남겨두고 연주하기, 초고속 스타카토, 왼손 피치카토, 동시에 여러 성부를 연주하는 착각같은
다른 연주자가 흉내내지 못하는 연주를 하였다.
특히 유명한 일화가 있다.
연주 중 바이올린 줄이 끊어졌는데도 남은 한 줄로 곡을 끝까지 연주했다는 이야기.
관객 입장에서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가장 쉬운 결론에 도달했다. “인간일 리 없다.”
그는 극단적인 삶을 살았다. 도박중독, 재산 탕진, 건강 악화, 스캔들 많은 연애 등,
심지어 도박 빚 때문에 바이올린을 팔아야 했던 적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 이후 그의 연주는 더욱 집착적으로 변한다.
연습량은 거의 집념에 가까웠다고 전해진다.
현대 연구자들은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이 질환은 손가락이 비정상적으로 길고 관절이 매우 유연해지는 특징이 있다.
즉, 사람들이 “악마의 손”이라고 부른 신체는 실제로는 의학적 특성이었을 수도 있다.
전설은 과학보다 먼저 만들어졌다.
그는 마케팅을 이해하고 있었다.
신비로운 이미지를 유지했고 연주 기술을 일부러 공개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전설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오늘날로 치면 록스타 전략이었다. 팬들은 열광했고, 도시마다 그의 공연은 매진됐다.
클래식 음악이 처음으로 대중적 열광을 경험한 순간이었다.
교회는 그가 악마와 연관됐다는 소문 때문에 가톨릭 장례를 거부했다.
그의 시신은 무려 몇 년 동안 제대로 묻히지 못했다.
죽어서도 전설이 계속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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