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인가, 문제적 인물인가 — 바그너의 사랑과 스캔들 이야기

 

Richard Wagner와 그의 아내 Cosima

 클래식 음악 역사 속에는 위대한 작품만큼이나 극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는 음악적 혁신과 함께 끊임없는 논란과

 스캔들을 남긴 인물로 유명하다.

오늘은 그의 음악이 아니라, 19세기 유럽 사회를 뒤흔들었던 연애 스캔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젊은 시절의 바그너는 지금 우리가 아는 ‘거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안정된 수입이 없었고 공연실패의 반복과 빚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이 시기에 그는 배우 민나 플라너(Minna Planer)와 결혼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경제적 불안과 잦은 이사, 바그너의 충동적인 성격 때문에 부부는 자주 갈등을 겪었다.

특히 바그너는 현실적인 생활보다 예술적 이상과 새로운 사랑에 쉽게 빠지는 사람이었다.

바그너 인생 최대의 스캔들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는 스위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시절, 부유한 사업가 오토 베젠동크(Otto Wessendonk)의 

후원을 받게 된다. 후원자는 바그너를 위해 집까지 제공하며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문제는 그 집에서 벌어졌다.  바그너는 후원자의 아내 마틸데 베젠동크와 깊은 감정적 관계에 빠지게

 된 것이다. 당시 상황은 매우 민감했다. 

후원자의 도움으로 생활하고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부부와 예술적 교류를 명분으로 가까워진 

관계였으나 후원자의 아내와의 관계는 공식적으로 인정된 연애는 아니었지만, 서로 주고받은 편지와

 시, 음악에서 강한 감정이 확인된다.

이 시기에 작곡된 작품이 바로 '트리스탄과 이졸데'이다.

많은 음악학자들은 이 작품을 금지된 사랑에서 탄생한 음악으로 본다.

결국 스캔들이 드러나자 바그너는 급히 떠나야 했고, 첫 번째 결혼 역시 사실상 파탄에 이른다.

시간이 흐른 뒤, 바그너는 다시 한 번 대형 논란의 중심에 선다.

그가 가까이 지내던 지휘자 한스 폰 뷜로(Hans Von Bulow)의 아내, 코지마(Cosima)와 사랑에 빠졌

는데 코지마는 그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프란츠 리스트(Franz Listz)의 딸이었다

여기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코지마는 이미 결혼한 상태이고 그녀의 남편은 바그너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던 인물이었고

바그너 역시 아직 법적으로는 결혼한 상태였기에 문제가 되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빠르게 깊어졌고, 결국 코지마는 바그너의 아이를 낳게 된다.

이 사건은 당시 유럽 음악계에서 엄청난 충격을 불러왔다.

결국 코지마는 바그너의 부인 민나 플라너가 죽은 뒤 한스 폰 빌로와 이혼한 후 바그너와 결혼하게 

되고, 이 관계는 그의 인생 후반을 결정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전 부인이었던 민나와 달리 코지마는 바그너를 숭배하고 강한 용기와 의지를 가진 여성이라서 그런지

평생을 방황하던 바그너가 코지마와의 결혼을 계기로 가정을 행복을 갖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논란 속에서도 바그너의 음악적 영향력은 오히려 커졌다는 사실이다.

그는 기존 오페라 형식을 완전히 바꾸며 음악과 극을 하나로 결합한 음악극의 개념을 제시하였고

거대한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확장과 새로운 화성언어를 개발하는 등을 통해 음악사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결국 그는 독일 바이로이트(Bayreuth)에 자신의 전용 극장까지 세우며 생전에 이미 전설적인 인물이

된다. 바그너의 삶을 돌아보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위대한 예술과 개인의 삶은 분리될 수 있을까?

그는 혁신적인 작곡가였지만, 동시에 감정에 충실한 연애 방식과 후원 관계 속에서 발생한 갈등으로

사회적 논란을 반복한 인물이었다.

어쩌면 그의 음악이 강렬한 감정과 극적인 긴장을 품고 있는 이유 역시 이처럼 격정적인 삶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공연장에서 듣는 웅장한 오페라 뒤에는 단순한 천재의 이미지가 아니라 복잡

한 인간 바그너가 존재한다.

그의 인생은 논란으로 가득했지만,그 경험들이 결국 음악사에 남을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 바그너는 유대인을 극도로 싫어해서 히틀러가 그를 숭배하였다고 하고 이스라엘에서는 그의 음악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프로이센의 왕 루드비히 2세가 그를 너무 숭배한 나머지 그림처럼 아름다운

노이슈반스타인성을 축조해서 그속에 바그너의 오페라의 모든 장면을 재현해 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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