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보다 더 드라마틱했던 사랑 이야기 - 인상주의 음악의 거장, 드뷔시

 

드뷔시와 그의 마지막 부인 엠마

클래식 음악을 떠올리면 흔히 고상하고 우아한 이미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작곡가들의 실제 삶은 놀라울 만큼 인간적이고, 때로는 격정적인 드라마에 가까웠다.

그중에서도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끌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아름다운 음악과는 대비되는 파란만장한 연애사로 유명하다.

오늘은 그의 음악 뒤에 숨겨진 실제 연애 스캔들을 깊이 있게 살펴보려 한다.

1880년, 18세의 드뷔시는 러시아 귀족 폰 메크 부인의 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음악 교사로 

일하게 된다. 얼마가지 않아 사춘기에 접어든 딸을 건드리려다 들켜 쫒겨나고 만다.

그는 어떤 여자든 아랑곳하지 않고 만났다고 한다. 

1887년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후에는 가브리엘 뒤퐁(Gabriel Dupont)과 10년간 동거하기도 했다.

뒤퐁은 권총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드뷔시의 여자 편력으로 고생하였다고 한다.

1894년 여가수 테레제 로저와 약혼까지 하였으나 뒤퐁과의 동거 사실을 알게되어 파혼하게 된다.

이 시기부터 드뷔시는 주변에서 “천재지만 연애 문제로 불안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드뷔시의 연애 방식에는 이미 특징이 나타나고 있었다.

사랑에 빠지는 속도는 빠르고 감정은 강렬하지만 관계의 지속성은 길지 않았다.

그에게 사랑은 안정된 관계라기보다 감정의 순간에 가까웠다.

1899년, 드뷔시는 모델 출신 여성 로잘리 텍시에(Rosalie Texier, 애칭 릴리)와 결혼한다.

텍시에는 드뷔시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결혼해 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는 위협에 결혼하였다고

한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결혼이었다. 하지만 몇 년 뒤, 그는 파리 사교계의 지적이고 매력적인 여성

으로서 성악가인 엠마 바르다크(Emma Bardac)을 만나게 된다.그녀는 파리의 은행가 부인이었다.

드뷔시 부부와 친구로 지내던 중 그녀와 사랑에 빠져 아내를 버리고 1904년 그녀와 결혼한다.

이 사건은 곧 파리 예술계를 뒤흔든 대형 스캔들로 번진다.

버림받은 아내 릴리는 절망 끝에 권총 자살을 시도했고,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언론과 사교계의 비난은 모두 드뷔시에게 쏟아졌다.

많은 친구와 동료 음악가들이 그와의 관계를 끊었고, 그는 사회적으로 고립에 가까운 상황을 겪게 된다.

드뷔시는 결국 엠마와 결혼하고 딸(Claude Emma)을 얻으며 비교적 안정된 가정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스캔들의 여파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지속된 사회적 비난과 경제적 압박 그리고 건강악화

까지, 그의 삶은 끝까지 완전히 평온해지지 않았다.

비난속에 결혼을 하여 딸을 얻었지만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고 직장암으로 고생하다가 1908년

3월 독일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


드뷔시의 음악은 몽환적인데 음악학자들은 드뷔시의 작품 세계와 그의 성격 사이에 깊은 연결이 있다

고 본다. 그의 삶에서 반복되는 특징인  감정 중심적인 선택, 현실보다 순간의 아름다움 추구 및

명확한 결론보다 여운을 남기는 태도 등으로 이러한 성향은 음악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전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난 흐름, 색채와 분위기를 중시한 화성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듯 남는 감정

이러한 것이 그의 음악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드뷔시의 음악은 단순한 작곡 기법이 아니라 그의 삶 자체가 만들어낸 감정의 언어였던 셈이다.

우리는 종종 위대한 예술가를 작품 속 이미지로만 기억한다.

하지만 드뷔시의 이야기는 한 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위대한 음악 뒤에는 언제나 복잡하고 인간적인 삶이 존재한다.

달빛처럼 부드러운 선율을 남긴 작곡가의 현실은,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 격정적이고 불완전했다.

어쩌면 그래서 그의 음악이 지금까지도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의 여운을 남기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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