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역사상 최초의 아이돌

프란츠 리스트


오늘날 콘서트장에서 팬들이 소리를 지르고, 굿즈를 사고, 스타를 따라다니는 모습은 익숙하다.

하지만 이런 문화가 클래식 음악에서도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중심에는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가 있었다.

19세기 유럽에서 그는 단순한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다.

1840년대 유럽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리스트의 공연이 열리면 여성 팬들이 눈물을 흘렸고 장갑을 던졌고 머리카락을 기념품으로 보관했고

공연 중 실신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독일 시인 하이네는 이 현상을 이렇게 불렀다.

“리스트마니아(Lisztomania)”

비틀즈 이전, 엘비스 이전, 이미 클래식 음악계에 팬덤 열풍이 존재했던 것이다.

왜 그렇게 열광했을까?

단순히 연주를 잘해서가 아니었다.

리스트는 공연 방식을 바꾼 사람이었다.

그 전까지 피아노 연주는 악보를 보며 옆을 향해 앉아 조용히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리스트는 달랐다.

피아노를 옆이 아니라 관객 정면으로 돌렸고 악보를 보지 않고 몸 전체로 연주하면서 공연 자체를 

하나의 드라마로 만들었다

지금 우리가 아는 ‘피아노 리사이틀’ 형식을 사실상 그가 만들었다.

리스트는 압도적인 외모와 카리스마로 음악가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스타성이 강했다.

긴 금발 머리,날카로운 눈빛,우아한 매너,귀족 같은 분위기 등 당시 초상화를 보면 거의 영화 배우 
수준이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말하자면 최초의 퍼포먼스형 음악가였다.

리스트의 연애사는 음악만큼 유명하다.

특히 작가이자 귀족이었던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의 관계는 유럽 사회를 뒤흔든 스캔들이었다.

그녀는 남편과 사회적 지위를 버리고 리스트와 도망치듯 떠났다.

두 사람은 유럽을 여행하며 예술가 공동체처럼 살았고, 이 시기에 리스트는 엄청난 창작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관계는 결국 끝난다.

아이러니하게도, 리스트의 삶은 늘 열정적으로 시작하고 조용히 끝나는 관계의 반복이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놀란다.

슈퍼스타였던 리스트는 중년 이후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다.

그는 종교에 깊이 몰두하고, 가톨릭 성직 서품을 받아 ‘아베 리스트(Abbé Liszt)’라고 불리게 된다.

팬들이 열광하던 스타가 검은 수도복을 입은 음악가가 된 것이다.

왜였을까?

많은 연구자들은 말한다.

젊은 시절의 극단적인 인기와 삶의 소음 속에서 그는 결국 내면의 평화를 찾고 싶어 했다고.

리스트의 가장 위대한 점은 단순한 연주력이 아니다.

그는 후배 음악가들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특히 리하르트 바그너가 경제적으로 파산했을 때 지원해 준 인물이 바로 리스트였다.

또한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며 그들을 스타로 만들었다.

오늘날 말하는 “멘토형 아티스트”의 원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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